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노르웨이 침공 (문단 편집) === 전투의 의의 === 이 전투의 의의를 요약하는 것은 당대의 각국 군인들, 후대 역사가들의 관점에 따라 다르다. 사실 대부분의 2차 대전 자료가 이런 식이지만, 노르웨이 침공의 경우는 서로간의 간극이 매우 크기 때문에 별도로 언급되곤 한다. * 영국 육군은 패배하였으나, 주력 부대를 보내지 않았으므로 어쩔 수 없는 결과라고 생각했다. 노르웨이 침공이 시작되고 한달 후인 5월에 프랑스 침공이 있었기 때문이고, 프랑스 침공이 시작되기 전부터 이미 서부전선에는 전운이 감돌았기 때문이다. * 노르웨이 육군 역시 강대국 앞에서는 할 것이 없었다. 이때의 경험은 현대 노르웨이의 국방 정책에도 많은 영향을 준다. 오늘날 노르웨이는 영국, 미국은 물론, 인접국인 스웨덴, 핀란드와도 국방정책에서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 독일 육군이야 당연히 완벽한 승리라고 보며, 오늘날의 관점에서도 독일 육군의 의견에 손을 들어준다. 하지만 적 전략 거점 코앞으로 수송선을 몰고 가서 보병을 내리는 전술은, 오늘날의 관점에서는 너무 구식인데다가 상대가 너무 약했던 면도 있은지라... 그닥 얻을만한 교훈이 없어서 종종 잊혀지곤 한다. * 독일 해군은 한방 먹였다고 생각했고, 드디어 킬 군항을 벗어나서, 북해로 진출할 수 있는 노르웨이의 항구를 획득한다는 전략 목표를 달성한데 만족했다. 이제 이것을 통해 영국 본토를 고립시킬 수 있을 것이었다. * 영국 해군도 한방 먹었다고 생각했고, 독일 수상함이 북해로 진출하게 된 것이 문제라고 여겼다. 영국이 잃은 수상함들도 경제문제로 쉽게 복구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당대에는 미국의 지원 여부는 미리 알 수 있는 것이 아니었고, 영국은 함대의 재배치를 통해 이 전투의 손실을 메꿨다. 간단히 말해, 영국 해군의 덩치가 컸기 때문에 노르웨이에서 입은 손실을 버틸 수 있었다. * 오늘날의 관점에서는 독일군이 피로스의 승리를 거둔 것으로 본다. 독일군은 수상함을 너무 많이 잃었고, 복구하기도 쉽지 않았으며, [[함대결전사상|구축함 손실의 의미를 오판했다.]] 영국 본토를 고립시키는 목표는 [[비스마르크 추격전|수상함으로는 불가능]]해졌으며, [[영국 본토 항공전|항공 세력으로도 불가능]]했다. 그때 혜성같이 등장한 구원투수가 [[카를 되니츠]]였으며, 독일은 노르웨이 항구를 통해 [[무제한 잠수함 작전]]을 시작한다. [* 통상파괴전 자체는 전시중립을 지키던 루스벨트 행정부에 큰 영향을 끼치지 못했고(심지어 1차대전 당시 미국의 참전 원인도 루시타니아호 격침 사건이 아니라 [[치머만 전보 사건]]이었다) 미국이 유럽전선에 병력을 투입한 것은 [[진주만 공습]] 이후 독일이 미국에 선전포고를 한 다음이었다.] * 독일의 지도자들은 킬 군항에서 벗어난 것과 안정적인 철광석 수급처를 얻은데에 만족했다. * 영국의 정치가들은 킬 군항에서 독일이 탈출한 것과, 영국 육군과 해군이 노르웨이에서 어영부영 싸운 탓에 손해를 제법 보았다는 점에 문제를 제기했고, 이게 프랑스 침공과 겹쳐 수상인 체임벌린의 목이 날아가고 대독 강경파인 처칠이 집권하는 계기중 하나가 된다. *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자면, 독일이 얻어야할 자원은 철광석만이 아니었고, 이것들을 전부 침공으로 얻는 것은 무모한 것이었다. 게다가 나르비크 항구는 그 자체로 가치를 가지는 것이 아니라, 영국의 초계를 벗어나서 영국을 타격할 수 있는 거점으로서 가치를 가지는 것인데, 타격할 화살이 될 함선들을 너무 많이 잃었다. 영국의 경우는, 처칠 역시 노르웨이의 결과에 책임이 없는 것은 아니었으나, 이 점은 처칠이 다른 국가 지도자들과 마찬가지로 2차 대전에서 저지른 무수한 군사적 삽질 중 하나로 간주된다. 정리하면, 영국은 지상전에서 졌다. 해상전에서도 많이 맞았으나, 전체 해군력 대비 손실 비율은 독일이 훨씬 높았다. 비유하자면, 헤비급 챔피언에게 라이트급 챔피언이 소나기처럼 유효타를 날리다가, 카운터로 어퍼컷을 한대 맞은 상황이다. 그 결과 독일은 '''해군력을 대가로 지불하며''' 노르웨이에서 승리했다. 독일이 노르웨이에서 얻고자 했던 전략목표인 철광석, 항구 역시 모두 쟁취했다. 비슷한 시기에 [[프랑스 침공]]도 성공으로 끝났다. 당대의 시점에서는 전술적으로나 전략적으로나 독일이 이긴 것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